세월호 참사 1주기 특별인터뷰 - 최초 신고자 故최덕하 군 아버지 최 성 웅 소장

 

■ 최초 신고자 故최덕하 군 아버지 최 성 웅 소장

덕하 군에 관해 듣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한 번 찾아봬도 될런지요…”
“…예, 오시죠.”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전화 버튼을 누르기 전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아픈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건 아닌 지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진입하려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속절없이 하늘로 떠난 아이들에 대한 부채의식도 뿌리칠 수 없었다.
 ‘문전박대를 당하더라고 할 수 없다.’이렇게 용기를 내 통화를 시도했는데 그는 참 담담했다. 고민이 무색해 질 정도로. 덕분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살려주세요. 제주도에 가고 있는데 배가 기우는 것 같아요”
119를 누른 건 최덕하 군이었다. 전화통화는 4분 16초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전화는 119상황실에서 해경상황실로 전달되고 갈팡질팡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더 얼이 나간 쪽은 덕하가 아닌 119상황실과 해경상황실이었다. 그들은 선생님을 바꾸라고 했다가, 배 이름을 물었다가, 여객선인지 어선인지를 묻더니, 급기야는 배를 타 본 적도 없는 위급한 고등학생에게 경도와 위도까지 물었다.  심장을 조여오는 256초 동안 이어진 긴급전화는 그렇게 엉뚱한 것만 묻다가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몹시 힘든 인터뷰였다.
대화하는 내내 눈물을 참기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2014년 4월 16일. 그의 시계는 그 때로 멈춰있다. 단 하루도 더 나가지 못한 채. 지금은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1년을 얘기하는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나 대비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사고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덕하 아빠 최성웅 소장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그런데 1분 1초가 아쉬운 위급상황에서 4분 16초씩이나 통화를 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구조시스템을 보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부임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그 전엔 수원영통지구에서 근무했으나 집이 있는 안산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출퇴근하고 싶어 군포로 전근을 자청했다. 인수인계도 끝나고 본격적인 새 소장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어 의욕이 충만한 날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뉴스에 선박침몰사고 소식이 나오는데 덕하가 탄 배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에이, 그렇게 큰 배가 설마…’하면서 TV를 켰다. 긴급뉴스에 대형여객선이 옆으로 누운 모습이 화면에 떠 있었다. 배 안에 학생과 일반승객 등 수백명이 타고 있다고 했지만, 화면에 나타난 배의 모습은 마치 텅 빈 것처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배는 눈에 띄게 가라앉고 있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화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급히 안산을 향해 내달렸다.
아내와 함께 단원고에 도착하니 이미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고, 전세버스를 대기시킨 상태였다. 뉴스에선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고 했다가 ‘오보’라고 말을 바꾸더니 구조인원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진도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라디오에선 최초 사망자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오열하는 가족과 괜찮을 거라 안심시키는 또 다른 가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도착한 현장은 지옥이었다. 온 몸이 젖은 생존자들은 공포와 불안과 바다에 두고 온 친구에 대한 죄책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부모들은 내 자식이 그들 중에 끼어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구조된 아이들, 아니 스스로 살아남은 아이들 중 덕하는 없었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올라온 덕하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힌 아이들은 쉽게 나오지 못했다. 가족들이 목격한 건 우왕좌왕하는 공무원들의 무기력한 모습뿐이었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가 나가는 중에도 실제론 조명탄 몇 발 쏘아 올리는 게 전부였다. 가족들은 분노했고, 급기야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기자의 출입을 막았다. 불신과 절망은 그렇게 쌓여갔다.
덕하는 사고발생 일주일만인 23일 발견됐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복도에 있었다. 다행히 큰 외상없이 약간의 타박상 흔적만 보였다. 최소장은 “다른 아이들은 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덕하는 아이들에게 양보하느라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한 모양”이라며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운 좋게 일찍 발견된 편”이라고 웃는다. 웃는 눈에 곧 쏟아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덕하는 그렇게 엄마 아빠와 함께 안산으로 돌아왔다. 발인식은 안산 와동성당에서 장례미사로 진행됐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지금 덕하는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있다.

웃음 잃은 가족에 선물처럼 꿈에
덕하는 늘 명랑 쾌활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마와 하나뿐인 누나에게 살갑게 구는 귀염둥이 막내였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함께 웃음도 잃었다. 10kg이 넘게 빠져 건강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누나가 그런 엄마를 보살피고 있다. 동생 잃은 충격에 빠질 만도 하건만 누나는 오히려 부모님 걱정에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24일 밤. 최소장의 꿈에 덕하가 찾아왔다. 4월 16일 이후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덕하였다. “덕하가 5~6살 때쯤의 모습이었는데 오자마자 품에 팍 안기더라고요. 꿈인데도 얼마나 반갑던지…”
서운한 마음을 담아 “아빠 안보고 싶었어? 왜 이제 왔어”라고 물었다.
덕하가 답했다. “아빠가 울 것 같아 못 왔어…”
잠시 후 그는 “성탄절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어요”라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지난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은 지쳐가던 유가족에게 커다란 힘이 됐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온 교황도 이렇게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데 일부에선 왜 자꾸 돈문제로만 몰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유가족이 바라는 건 단 하나. 진실규명입니다. 보상을 요구한 적도 없는데 정부는 몇 억씩 보상하겠다는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현장복귀
그가 다니던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고마운 전화였다. 그러나 고민이 컸다. 먼저 직장으로 복귀한 다른 아빠들이 그만 두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 복귀했고, 인수인계 받았던 그 곳에서 4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회사와 주민들에게 무척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픔을 함께 해준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경기도회 그리고 안산지부, 또 멀리서도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대구시회와 경북도회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우리는 안전한 나라와 진실한 정치만을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겁니다.”
덕하와 아이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안전한 나라로 큰 걸음을 내딛었다. 좀 느리지만 엄마 아빠들이 바라는 대로 갈 것이다. 반드시.
많은 부모들이 아직까지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덕하 역시 주민등록에는 그대로 살아 있다. 덕하의 방과 쓰던 물건들 역시 모두 그대로다.
엄마와 누나가 늘 쓸고 닦고 하며 불도 지피고 있다. 긴 여행을 마친 덕하가 금방이라도 뛰어 들어와 품에 안기며 “배고파 밥 줘”라고 응석을 부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덕하야, 꿈속에서라도 엄마 아빠 누나에게 자주 찾아와 주렴.
 

故 최덕하군 어머니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 덕하에게
너와 내가 함께했던 순간은 짧지만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고
너 또한 엄마를 많이 사랑했던 걸 우린 서로 잘 알잖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 모든 것이 왜 일어났는지….
어른들의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행동들 때문에 꽃다운
어린아이들이 물속에서 죽어간 것이 아닌지 너무나 슬프단다.
너를 잃은 아픔이 너무나 크지만 많은 사람이 널 기억해주고 기도해줘서
네가 분명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고 생각이 들어.
엄만 우리 덕하가 119에 최초로 신고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어.
우리 아들 참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장하다.

덕하야.
너를 사랑했던 이 소중한 순간들 영원히 간직할게.
너도 좋은 곳에 가서 하느님 나라에 가서 엄마 기다리고 있어.
엄마 가는 날까지...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리고 아직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네 친구들 모두 구해줘.
이제 여기는 잊고 아직 물속에 있는 네 친구들을 부탁해.
그리고 배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 다 구해주시라고,
다 건져주시라고 하느님께 부탁해줘.

영원히 사랑한다 아들아.
우리 아들아, 너를 한 번 안고 싶다.
내 품에 안아보고 싶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잘 가라. 그리고 도와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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